빛은 왜 물속에서 휘어 보이는가
빛은 왜 물속에서 휘어 보이는가 — 나는 이 꺾임 앞에서 우리의 눈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물속 막대는 가르친다. 눈은 빛을 정직하게 따랐을 뿐, 그 빛이 어디서 꺾여 왔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우리가 본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서 출발해 여러 매질을 거쳐 도착한 빛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그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거쳐 세월과 소문과 내 마음을 지나온 빛을 본 것인지 모른다. 보이는 위치가 참된 위치가 아닐 수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겸손의 시작이다.
맑은 냇물 속 막대기는 수면에서 꺾인 것처럼 보이고, 물속 동전은 실제보다 떠 보인다. 손을 넣어보면 막대는 멀쩡하고 동전은 더 깊은 곳에 있다. 우리 눈은 분명 무언가를 잘못 보고 있다. 그러나 매번 똑같이 속는다면, 그것은 착각이 아니라 어떤 법칙일 것이다.
이 어긋남을 처음 진지하게 잰 이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였다. 그는 물에 빛이 들어갈 때 꺾이는 각도를 표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각들을 묶는 정확한 규칙은 천 년이 넘도록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랍의 이븐 사흘, 페르시아의 학자들이 다가섰고, 17세기에 네덜란드의 스넬과 프랑스의 데카르트가 마침내 그 규칙을 수식으로 적었다. 우리가 매일 보면서도 설명하지 못한 그 꺾임을, 인류는 천오백 년 만에야 식으로 묶어낸 것이다.
핵심은 이것이다. 빛은 매질마다 속도가 다르다. 공기보다 물에서, 물보다 유리에서 느려진다. 빛이 비스듬히 다른 매질로 들어갈 때, 한쪽 끝이 먼저 느려지면서 진행 방향이 꺾인다. 행렬이 진흙탕에 비스듬히 들어설 때 한쪽 발이 먼저 빠지며 줄이 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물속 막대에서 나온 빛은 수면에서 꺾여 우리 눈에 들어오고, 뇌는 빛이 곧게 왔다고 믿고 막대의 위치를 잘못 잡는다. 막대가 꺾인 게 아니라, 막대를 그린 빛이 꺾인 것이다. 우리 눈은 정직하게 빛을 따랐을 뿐이다.
- 안경과 돋보기는 이 굴절을 다스려 흐릿한 세상을 또렷하게 한다. 노안이 온 눈에 돋보기를 더하는 것은, 빛을 알맞게 꺾어 망막에 상을 맺게 하는 일이다.
- 광섬유는 빛을 유리 가닥 안에 가두어 멀리 보낸다. 빛이 가장자리에서 계속 안쪽으로 꺾여 되돌아오기에, 한 가닥의 유리가 대륙을 잇는 통신선이 된다.
- 낚시꾼이 물속 물고기를 겨눌 때 보이는 곳보다 약간 아래를 노리는 것도, 빛의 굴절로 물고기가 떠 보인다는 오랜 경험의 지혜다.
나는 이 꺾임 앞에서 우리의 눈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는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물속 막대는 가르친다. 눈은 빛을 정직하게 따랐을 뿐, 그 빛이 어디서 꺾여 왔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우리가 본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에서 출발해 여러 매질을 거쳐 도착한 빛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그 사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거쳐 세월과 소문과 내 마음을 지나온 빛을 본 것인지 모른다. 보이는 위치가 참된 위치가 아닐 수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겸손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