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이 없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한다
마찰이 없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한다 — 나는 마찰을 생각하며 인생의 저항들을 떠올린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친 마찰들을 원망했다. 나를 막아선 사람, 더디게 한 사정, 닳게 한 세월. 그러나 마찰이 없으면 한 발도 내딛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고요하게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고 디뎌온 자리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었다. 매끄럽기만 한 길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를 붙들어 준 것과 나를 막아선 것은, 어쩌면 같은 힘의 두 얼굴이었다.
마찰은 늘 성가신 것이었다. 기계를 닳게 하고, 짐을 무겁게 하고, 빙판에서 우리를 넘어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마찰을 줄이는 법"을 궁리하며 살았다. 그런데 만약 마찰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정말로 우리는 자유로워질까. 얼음판 위에서 한 발도 떼지 못해 본 사람은 답을 안다.
오랫동안 마찰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불편으로 취급됐다. 수레꾼은 바퀴에 기름을 칠했고, 대장장이는 쇠를 갈았지만, 아무도 "왜 멈추는가"를 묻지 않았다. 마찰을 정면으로 들여다본 이는 15세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였다. 그는 공책에 추를 매단 블록을 끌며 그 힘을 적었다. 무게가 두 배면 마찰도 두 배. 그러나 그의 공책은 수백 년간 묻혀 있었고, 18세기 프랑스의 기술자 쿨롱이 같은 법칙을 다시 발견해 세상에 내놓았다.
핵심 통찰은 단순하면서 깊다. 마찰은 두 표면이 맞닿아 서로를 붙드는 힘이다. 아무리 매끄러워 보이는 면도 미세하게는 울퉁불퉁하여, 서로 맞물린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나온다. 우리가 걷는 것 자체가 마찰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발이 땅을 뒤로 밀면, 마찰이 그 반대로 우리를 앞으로 밀어준다. 마찰이 없으면 발은 헛돌고, 우리는 제자리에서 미끄러질 뿐이다. 자동차 바퀴도, 손으로 쥐는 컵도, 매듭지은 끈도 모두 마찰이 붙들어 준다. 적이라 여긴 것이 사실은 디딜 땅이었다.
- 겨울 빙판에 모래나 염화칼슘을 뿌리는 것은 마찰을 되살려 넘어짐을 막기 위함이다. 마찰을 없애려는 평생의 노력과는 정반대의 지혜다.
- 브레이크는 마찰로 차를 세운다. 디스크와 패드가 맞비비며 운동을 열로 바꾸어 멈춤을 만든다. 우리는 마찰 덕에 달리고, 또 마찰 덕에 멈춘다.
- 나사못과 매듭, 손바닥의 지문까지 — 무언가를 붙들고 쥐는 모든 일이 마찰의 도움이다. 노인의 손이 미끄러운 컵을 놓치는 것은 손끝 마찰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마찰을 생각하며 인생의 저항들을 떠올린다. 우리는 살면서 마주친 마찰들을 원망했다. 나를 막아선 사람, 더디게 한 사정, 닳게 한 세월. 그러나 마찰이 없으면 한 발도 내딛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고요하게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고 디뎌온 자리에는 언제나 저항이 있었다. 매끄럽기만 한 길에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를 붙들어 준 것과 나를 막아선 것은, 어쩌면 같은 힘의 두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