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134

나를 낳고 기르시느라 애쓰신 부모의 수고는 무엇으로 갚을 수 있는가?

처음 던진 이 이름 없는 백성 (「시경」에 채록된 민요)
기원전 11~7세기경 (서주~춘추 초기 민요)
물음 그 자체

부모를 미처 봉양하기도 전에 여읜 자식은, 그 수고에 무엇으로 답할 수 있는가?

물음의 원문
哀哀父母,生我劬勞
📜 물음이 태어난 구절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애쓰고 수고하셨네.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시경」의 이 통곡은 후대 효 문학의 원형이 됐다. 한대의 「한시외전」은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구절로 같은 슬픔을 이었다. 반면 불교가 들어오며 이 슬픔은 다른 답을 얻었다 — 「우란분경」은 목련존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승려들에게 공양하여 그 은혜에 답하는 길을 열었다. 효를 갚을 길 없다는 유가의 통곡에, 불교는 공덕을 회향하는 새로운 갚음의 방식을 더했다.

♾️ 왜 아직 살아있는가

부모를 일찍 여읜 이에게, 갚을 길 없는 은혜 앞에서 슬퍼하는 이 시는 3천 년이 지난 오늘도 정확히 같은 자리를 건드린다.

💡 한 줄 요약

이 시는 부모를 미처 봉양하기 전에 여읜 이의 통곡이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이 시는 부모를 미처 봉양하기 전에 여읜 이의 통곡이다. 시인은 병들어 지친 몸으로 자신을 낳고 기른 부모의 수고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슬퍼한다. 나는 이 시에서 효가 계산으로 갚을 수 있는 빚이 아님을 배운다. 낳고 기른 은혜는 애초에 등가로 갚을 길이 없고, 그래서 슬픔은 더 깊어진다. 그러나 그 갚을 수 없음을 아는 마음 자체가 이미 효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나도 다 갚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 ONGO ·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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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시경」 소아(小雅), 육아(蓼莪)편. 한문 원전 완전 PD(중국 최고(最古) 시가집). ONGO 자체 의역(Legge 1861년 역 참조).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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