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내가 나임을 무엇으로 확신하는가?
모든 것을 의심해도 끝내 의심할 수 없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는 확실한 것을 찾으려 일부러 모든 것을 의심했다. 감각도, 세계도, 수학마저 악령이 속이는 것일 수 있다고. 그러나 속고 있는 그 순간에도 "속고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만은 무너지지 않았다. 여기서 근대 자아가 태어났다. 그러나 반박이 곧 뒤따랐다. 흄은 아무리 내면을 들여다봐도 "생각하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안 보이고 지나가는 느낌들만 있다고 했다. 리히텐베르크는 "생각한다"가 아니라 "생각이 일어난다"고 해야 옳다고 꼬집었고, 니체는 "나"라는 주어는 문법이 만든 착각일 뿐이라 했다. 확실했던 자아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뇌과학과 인공지능이 자아를 다시 묻는 이 시대에도, "나는 무엇인가"는 여전히 열려 있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안도했다. 세상 모든 것이 꿈이어도 그것을 의심하는 나만은 남는다니. 그러나 흄과 니체를 지나온 지금, 나는 그 "나"가 생각만큼 단단하지 않음을 안다. 눈을 감고 "생각하는 나"를 찾으면, 잡히는 건 지나가는 생각들뿐 그것을 붙드는 주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물음을 던지는 무언가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 — 나는 그 신비 앞에 아직 서 있다.
✍️당신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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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