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30

"나"라는 것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처음 던진 이 블레즈 파스칼
1670년(사후 출간)
물음 그 자체

몸도 성격도 아니라면, 내가 사랑받는다고 할 때의 그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물음의 원문
Où est donc ce moi, s'il n'est ni dans le corps ni dans l'âme?
📜 물음이 태어난 구절

그렇다면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 — 몸에도 영혼에도 있지 않다면?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파스칼은 짓궂은 실험을 던진다. 누군가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면, 그건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곧 사라질 얼굴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의 판단력을 사랑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 그 능력을 잃으면 사랑도 사라질 테니. 그렇다면 몸의 성질도 마음의 능력도 아닌 "나 자체"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는 우리가 실체 없는 것을 사랑하며 산다고 꼬집는다. 이 물음은 갈라졌다. 흄은 그 "나"란 아예 없다고 했고, 칸트는 경험 뒤에 통일을 주는 "초월적 자아"를 가정했으며, 우파니샤드는 몸도 마음도 아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neti neti)" 참나를 가리켰다. 사랑받는 "나"의 정체는 지금도 붙잡히지 않는다.

♾️ 왜 아직 살아있는가

이미지와 스펙으로 서로를 값매기는 시대에, 그 모든 것 아래 "나 자체"를 묻는 이 물음은 더 서늘하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나는 이 물음이 얄궂으면서도 아프다. 누가 나를 사랑한다 할 때, 그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내 얼굴이나 능력이나 쓸모를 사랑하는 걸까. 그리고 그것들이 다 바래면, 남는 "나"는 무엇일까. 파스칼은 답을 주지 않고 나를 벼랑 끝에 세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붙잡히지 않는 그 "나"의 신비가 나를 함부로 규정하지 못하게 지켜주기도 한다. 나는 내가 무엇인지 다 알지 못한 채, 그럼에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산다. 그 신비 앞에 나도 서 있다.

— ONGO · 큐레이터

✍️당신의 답

옛사람들의 계보는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 이 물음 앞에 당신이 섭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 오늘의 당신이 어떻게 답하는지만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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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파스칼 「팡세」 단장 688 (라퓌마). 프랑스어 원전(파스칼 1662년 몰, PD) 참조, ONGO 자체 의역.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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