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160

평생 애써 얻은 것을, 얼굴도 모를 다음 사람에게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처음 던진 이 전도자(코헬렛)
기원전 3세기경 (히브리 지혜문학 후기)
물음 그 자체

내가 평생 쌓은 것을, 그것을 쌓느라 흘린 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 대가 없이 물려받는다면, 그 쌓음의 의미는 어디 있는가?

물음의 원문
וְשָׂנֵאתִי אֲנִי אֶת־כָּל־עֲמָלִי שֶׁאֲנִי עָמֵל תַּחַת הַשָּׁמֶשׁ שֶׁאַנִּיחֶנּוּ לָאָדָם שֶׁיִּהְיֶה אַחֲרָי
📜 물음이 태어난 구절

해 아래서 내가 애써 얻은 모든 수고를 나는 미워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내 뒤에 올 사람에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물려줌의 허무를 짚은 이 구절은 이후 여러 답으로 갈렸다. 유가는 오히려 이 물려줌 자체를 긍정해, 자손에게 남기는 것을 대(代)를 잇는 자연스러운 도리로 보았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소유가 애초에 잠시 맡겨진 것이라는 관점으로, 물려줌을 상실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반환으로 재해석했다. 반면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상속을 법적 권리로 제도화하면서, 전도자가 던진 허무의 물음 자체를 회피하는 쪽을 택했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은 답을 낸 만큼 다시 열린다.

♾️ 왜 아직 살아있는가

자산을 어떻게 물려줄지 계획을 세우는 오늘도, 그것을 왜 물려주고 싶은지를 묻는 이 오래된 절망은 여전히 유효한 물음이다.

💡 한 줄 요약

전도자는 왕으로서 온갖 부와 업적을 이뤘지만, 그 모든 것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전도자는 왕으로서 온갖 부와 업적을 이뤘지만, 그 모든 것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더구나 그 다음 사람이 지혜로울지 어리석을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절망이 성취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성취의 소유권이 결국 내 것이 아님을 직시하는 정직함이라 읽는다. 내가 쌓은 것은 언젠가 내 손을 떠난다. 나도 오늘, 내가 쌓고 있는 것이 정말 "나를 위한" 것인지 되묻는다.

— ONGO · 큐레이터

✍️당신의 답

옛사람들의 계보는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 이 물음 앞에 당신이 섭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 오늘의 당신이 어떻게 답하는지만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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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전도서 2장 18~19절. 히브리어 원전(마소라 본문, PD) + ONGO 자체 의역. 개역개정 등 현대 번역 인용 없음.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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