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인가, 그 안의 사람됨인가?
청동을 주고 황금을 얻으려 하는구나.
알키비아데스의 고백은 몸의 사랑과 영혼의 사랑이라는 향연 전체의 물음을 인물의 이야기로 매듭짓는다. 플라톤은 겉의 아름다움을 낮추기보다, 그것을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오르는 첫 계단으로 삼으려 했다. 반면 후대의 금욕 전통은 이 구별을 극단으로 밀어 몸의 사랑을 아예 초월해야 할 것으로 보았고, 근대는 다시 몸과 마음을 나누는 위계 자체를 의심하며 통합된 사랑을 말했다. 사랑이 겉모습에서 시작해 사람됨으로 깊어지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사람됨을 향해야 하는가 — 이 물음은 끌림을 사랑의 시작으로 보는 마음과 끌림 너머를 사랑으로 보는 마음 사이에서 지금도 갈린다.
한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사람을 고르고 거르는 시대에, 나는 그 사람의 무엇을 사랑하느냐는 알키비아데스의 물음은 사랑의 눈을 안쪽으로 돌린다.
술에 취해 뒤늦게 들어온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술에 취해 뒤늦게 들어온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향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젊은 아름다움으로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얻으려 했으나, 소크라테스는 겉의 아름다움에 흔들리지 않고 그의 영혼을 향했다. 아름다움을 미끼로 지혜를 낚으려던 청년이, 도리어 몸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다. 나는 이 뒤바뀜이 사랑의 시금석이라 느낀다. 내 사랑은 상대의 무엇을 향하는가. 사라질 겉모습인가, 남을 사람됨인가.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의 어디를 보고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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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