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사랑은 상대의 좋음을 바라는 것인가?
사랑은 내가 느끼는 감정인가, 상대의 좋음을 바라는 의지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좋음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퀴나스가 이어받은 이 정의는 사랑을 감정과 의지 중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물음을 벼려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사랑을 상대의 좋음을 바라는 능동적 선의로 보았고, 스토아는 이를 이어 사랑을 다스릴 수 있는 이성의 방향으로 삼았다. 반면 낭만주의와 근대 심리학은 사랑을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감정의 사건으로 되돌려, 좋음을 바라는 것과 끌리는 것은 다르다고 보았다. 사랑은 의지로 선택하는 선의인가, 나를 덮치는 감정인가 — 이 물음은 사랑을 상대를 위한 의지로 보는 마음과 사랑을 나를 사로잡는 정념으로 보는 마음 사이에서 지금도 갈린다.
사랑을 오직 설렘과 끌림으로 재는 시대에, 사랑은 상대의 좋음을 바라는 것이라는 아퀴나스의 물음은 내 사랑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묻게 한다.
아퀴나스는 사랑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이어받아 짧게 정의한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아퀴나스는 사랑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이어받아 짧게 정의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좋음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사랑을 설레는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잘됨을 바라는 의지로 놓은 것이다. 나는 이 정의가 사랑의 시금석이라 느낀다.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해 기쁜 것과,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다르다. 앞은 나를 위한 마음이고, 뒤는 그를 위한 마음이다. 내 사랑은 상대의 좋음을 정말 바라는가, 아니면 그가 내게 주는 기쁨을 원하는가. 나도 그 경계 위에서, 내 사랑의 방향을 조심스레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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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