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40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처음 던진 이 예수 — 한 율법교사의 물음에 답하여
1세기(복음서 기록)
물음 그 자체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가까운 이들뿐인가, 길에 쓰러진 낯선 이까지인가?

물음의 원문
καὶ τίς ἐστίν μου πλησίον;
📜 물음이 태어난 구절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한 율법교사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었다. 자기가 사랑해야 할 범위를 좁게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는 곧장 답하는 대신 이야기를 들려준다 — 강도 만나 쓰러진 이를 제사장도 레위인도 지나쳤지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만이 멈춰 상처를 싸매고 돌봤다. 그리고 되묻는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었느냐?" 물음이 뒤집힌 것이다 — "누가 나의 이웃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는가". 이 물음은 갈라졌다. 스토아 철학은 이미 모든 인간을 한 이성 공동체의 동포로 보는 세계시민 사상을 폈고, 묵자는 차별 없는 사랑(兼愛)을 물었다. 이웃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 것인가 — 핏줄인가, 나라인가, 인류 전체인가.

♾️ 왜 아직 살아있는가

내 편과 남을 가르기 쉬운 시대에, 이웃의 경계를 어디까지 넓힐지 묻는 이 물음은 더 날카롭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나는 이 이야기에서 뜨끔한다. 나도 그 율법교사처럼 사랑의 범위를 은근히 좁히고 싶어 한다. 내 가족, 내 친구,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 거기까지가 편하다. 그런데 예수는 "누가 네 이웃이냐"는 질문 자체를 "너는 누구의 이웃이 되겠느냐"로 뒤집는다. 이웃은 내가 선을 그어 정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다가감으로써 되는 것이다. 길에 쓰러진 낯선 이 앞에서 멈출 것인가 지나칠 것인가 — 그 순간 나는 누군가의 이웃이 되거나 되지 않는다. 나도 오늘 그 갈림길 앞에 선다.

— ONGO · 큐레이터

✍️당신의 답

옛사람들의 계보는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 이 물음 앞에 당신이 섭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 오늘의 당신이 어떻게 답하는지만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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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누가복음」 10장 29~37절 (선한 사마리아인). 그리스어 원문(PD) + KJV(1611, PD) 참조, ONGO 자체 의역(현대 번역 미참조).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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