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있되 닿을 수 없는 것
The Meeting
올림포스에서 추방된 왕은 턱까지 차오르는 물을 마실 수 없었고, 동아시아의 현자는 그림 속 떡을 아무리 봐도 먹을 수 없었다. 하나는 신의 형벌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생의 통찰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고통을 말한다 -- 보이는데 닿지 않는 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서양의 신화 -- Tantalus (탄탈로스)
탄탈로스는 리디아의 왕이자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그는 올림포스의 연회에 초대받는 특권을 누렸지만, 신들의 음식을 훔쳐 인간에게 나누어주고 신들의 비밀을 누설했다. 가장 끔찍한 죄는 자기 아들 펠롭스를 잘라 요리해 신들에게 대접한 것이다. 분노한 제우스는 탄탈로스를 타르타로스(지옥)에 보냈다. 그의 형벌: 턱까지 차오르는 물속에 서 있지만 고개를 숙이면 물이 빠지고, 머리 위에 과일이 달려 있지만 손을 뻗으면 바람이 가지를 올린다. 영원한 갈증과 굶주림. 1597년 셰익스피어 시대에 tantalize라는 동사가 탄생했다.
화학 원소 tantalum(탄탈룸)도 이 신화에서 왔다. 산(酸)에 담가도 녹지 않는 성질이 마치 물속의 탄탈로스가 물을 마실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여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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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ford English Dictionary"tantalize, v." 1597. From Tantalus + -ize. "To torment by presenting something desirable but keeping it out of r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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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ymonlinetantalize (v.): 1590s, from Tantalus, Greek Tantalos, king punished in Hades.
동양의 지혜 -- 화중지병
화중지병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위나라 황제 조예가 인재를 등용할 때 명성만 보고 뽑으려 하자, 신하 노육이 간언했다: "명성으로만 사람을 뽑는 것은 그림 속의 떡(畫餅)과 같아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실제 능력을 시험해야 합니다." 조예는 이 말을 받아들여 실력 위주의 인사 정책을 시행했다. 여기서 화중지병은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용없는 것"을 가리키는 성어가 되었다.
화중지병의 교훈은 실용주의적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라도 떡을 대신할 수 없듯, 명성은 실력을 대신할 수 없다. 탄탈로스가 신의 벌을 받은 것과 달리, 화중지병은 인간 스스로의 자기 기만에 대한 경고다.
거울의 교차점 -- 두 신화가 만나는 지점
둘 다 "보이지만 닿지 못하는" 좌절을 핵심으로 한다. 탄탈로스는 물과 과일을, 화중지병은 그림 속 떡을 얻지 못한다.
둘 다 "실체와 환상"의 구분을 강조한다. 탄탈로스의 물과 과일은 신의 환영이고, 그림 속 떡은 실체가 없는 이미지다.
둘 다 단어/관용어로 살아남아 일상에서 쓰인다. tantalize는 영어에서, 화중지병은 한국어에서 "닿을 수 없는 갈망"을 표현할 때 쓰인다.
그러나 원인이 다르다. 탄탈로스의 고통은 신의 "형벌"이지만, 화중지병은 인간의 "착각"이다. 서양은 외부의 벌로, 동양은 내부의 오류로 읽었다.
기억 장치 -- 집에 가져갈 한 줄
- ✓ Tantalus = 물속에 서서 물을 마실 수 없는 왕. tantalize = 보여주되 주지 않다.
- ✓ 畫中之餅 = 그림(畫) 속(中)의(之) 떡(餅). 아무리 봐도 먹을 수 없다.
- ✓ 한 번에 기억: "탄탈로스는 물속에서 목마르고, 화중지병은 떡 앞에서 배고프다 -- 둘 다 눈앞의 허상."
"보이는 것과 닿을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진짜 갈증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물이 닿지 않아서 생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