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나는 무슨 자격으로 남을 판단하는가?
남의 눈 속 티끌은 보면서 내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판단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예수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했다. 남의 눈 속 작은 티끌은 그토록 잘 보면서, 정작 제 눈 속 들보는 못 보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을 재는 그 잣대로 내가 도로 재어진다. 그러니 먼저 제 눈의 들보를 빼라 — 이는 판단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 없는 정죄의 오만을 경계하는 말이다. 이 물음은 여러 전통과 통한다. 공자는 "군자는 자기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고 했고, 스토아는 남의 잘못이 무지에서 나온 것이니 정죄보다 이해하라 했다. 그러나 정의의 물음은 반문한다 — 아무도 판단하지 않으면 옳고 그름은 누가 가리는가? 판단을 멈추라는 것인가, 나를 먼저 판단하라는 것인가.
누구든 순식간에 심판대에 세우기 쉬운 시대에, 내 잣대를 나에게 먼저 대보라는 이 물음이 더 절실하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나는 남을 판단하는 데 놀랍도록 빠르다. 저 사람은 게으르다, 이기적이다, 생각이 없다 — 한순간에 저울이 기운다. 그런데 예수의 말처럼, 내가 남에게 들이대는 그 날카로운 잣대를 나 자신에게 대본 적은 거의 없다. 남의 티끌은 확대되고 내 들보는 안 보인다. 이 말이 판단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죄의 손가락을 들기 전에, 그 손가락을 나에게 먼저 돌려보라는 것. 나는 오늘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순간, "나는 이 잣대를 견딜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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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