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114

나의 욕망 중 무엇이 자연스럽고 무엇이 헛된가?

처음 던진 이 에피쿠로스
기원전 4~3세기, 아테네
물음 그 자체

몸의 욕망을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과 헛된 것으로 나눌 수 있다면 — 나는 지금 무엇을 좇고 있는가?

물음의 원문
ὁ τῆς φύσεως πλοῦτος καὶ ὥρισται καὶ εὐπόριστός ἐστιν· ὁ δὲ τῶν κενῶν δοξῶν εἰς ἄπειρον ἐκπίπτει
📜 물음이 태어난 구절

자연이 주는 부는 한정되어 있어 쉽게 얻어지지만, 헛된 생각이 좇는 부는 끝없이 뻗어나간다.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자연의 부는 한정되나 헛된 부는 무한하다"는 에피쿠로스의 통찰은 욕망을 어떻게 다룰까의 계보에 놓인다. 그는 욕망을 없애는 대신 자연이 정한 한정된 필요에 그치라 했다. 스토아는 더 엄격하게 욕망 자체를 다스려 없애려 했고, 불교는 갈애(渴愛)를 괴로움의 뿌리로 보아 소멸을 길로 삼았다. 그러나 정반대의 계보도 있었다. 견유와 일부 쾌락주의는 자연스러운 욕망의 자유로운 충족을 옹호했고, 근대 자본주의는 욕망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끝없이 창출하고 충족시킬 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욕망은 분별할 것인가, 없앨 것인가, 풀어놓을 것인가. 계보가 갈라졌다.

♾️ 왜 아직 살아있는가

끝없이 새 욕망을 만들어내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자연스러운 필요이고 무엇이 헛된 갈망인가"라는 이 물음은 몸의 욕구에 분별을 되돌린다.

💡 한 줄 요약

에피쿠로스는 부(富)를 두 갈래로 갈라 본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에피쿠로스는 부(富)를 두 갈래로 갈라 본다. 자연이 정한 필요를 채우는 부는 한정되어 있어 쉽게 이르지만, 헛된 생각이 부풀린 부는 끝이 없어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이 물음이 "얼마면 충분한가"를 되묻게 한다고 읽는다. 자연스러운 필요는 곧 바닥이 보이지만, 남의 눈이 심은 갈망은 무한으로 치닫는다. 지금 나를 끌고 가는 이 욕망은 곧 채워져 그칠 것인가, 아니면 끝없이 더 큰 것을 부를 것인가. 나도 이 분별 앞에서, 이 물음 앞에 서 있다.

— ONGO · 큐레이터

✍️당신의 답

옛사람들의 계보는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 이 물음 앞에 당신이 섭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 오늘의 당신이 어떻게 답하는지만 남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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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에피쿠로스 「주요 교설」 15 (Kyriai Doxai). 그리스어 원전 PD(에피쿠로스 기원전 270년 몰). R. D. Hicks(1929년 몰, PD) 영역 참조, ONGO 자체 의역. 메노이케우스 편지(day 28)와 다른 텍스트.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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