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시간은 만물을 삼키는가?
시간이 결국 모든 것을 갉아 삼킨다면, 그 이빨을 견디는 것은 무엇인가?
만물을 삼키는 시간.
"만물을 삼키는 시간"이라는 오비디우스의 이미지는 시간을 파괴자로 그리는 오랜 전통의 정점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가 자기 자식을 삼키듯, 시간은 자기가 낳은 모든 것을 되삼킨다. 이 파괴의 시선에 맞서 인간은 두 가지 대답을 지어냈다 — 하나는 시간을 이기는 명성과 예술이니, 오비디우스 자신도 같은 시의 끝에서 "내 작품은 세월도 삼키지 못하리라" 노래했다. 다른 하나는 전도서처럼 모든 것이 스러짐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몫에서 기쁨을 찾는 길이다. 시간의 이빨에 맞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은, 파괴와 항구 사이에서 여전히 갈라진다.
무엇이든 순식간에 낡고 잊히는 시대에, 시간의 이빨을 견디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오비디우스의 물음은 오래 남길 가치를 다시 묻게 한다.
오비디우스는 변신을 노래하는 시의 끝에서 만물의 덧없음을 짚는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오비디우스는 변신을 노래하는 시의 끝에서 만물의 덧없음을 짚는다. 시간은 만물을 삼키는 자, 세월은 모든 것을 천천히 갉아 죽음으로 끌고 간다. 단단한 바위도, 높은 성벽도, 이름난 도시도 시간의 이빨 아래 부스러진다. 나는 이 물음이 절망이 아니라 정직한 응시임을 안다. 무엇도 시간을 이기지 못한다면, 그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으며 살 것인가. 스러질 것을 알면서도 짓는 그 역설 앞에, 나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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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