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감각의 길과 진리의 길, 어느 것이 참인가?
변화하고 사라지는 감각 세계와 변치 않는 이성의 진리 중, 무엇이 참으로 있는 것인가?
하나는 있다는, 그리고 없을 수 없다는 길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이성을 감각 위에 올려놓은 순간, 서양 철학의 큰 분기가 시작됐다. 그의 제자 제논은 화살과 거북의 역설로 운동이 이성적으로 불가능함을 증명하려 스승을 옹호했다. 반대편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흐른다며 변화야말로 실재라 맞섰고, 이 둘의 대립은 플라톤이 변치 않는 이데아(파르메니데스 쪽)와 흐르는 감각 세계(헤라클레이토스 쪽)를 두 층으로 나누는 종합으로 이어졌다. 이성이 옳은가 감각이 옳은가라는 이 물음은 훗날 합리론과 경험론의 이천 년 논쟁으로 다시 타올랐다.
수치와 모델이 직관과 어긋날 때 무엇을 믿을지 정해야 하는 순간마다, 이 가장 오래된 인식론의 갈림길이 다시 열린다.
파르메니데스는 여신의 입을 빌려 두 길을 갈라 세운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파르메니데스는 여신의 입을 빌려 두 길을 갈라 세운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진리의 길, 그리고 있기도 없기도 하다며 감각을 좇는 의견의 길. 그는 감각이 보여주는 생성과 소멸이 이성으로 따지면 모순이라 했다. 나는 그의 결론을 다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눈이 보여주는 것과 머리가 따지는 것이 어긋날 때 어느 쪽을 믿을 것인가라는 그 물음만은, 나도 매번 다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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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