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177

이익을 좇는 마음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가, 다스려야 할 대상인가?

처음 던진 이 순자
기원전 3세기경 (전국시대 말)
물음 그 자체

이익을 좇는 마음을 타고난 본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그것을 다스릴 더 현실적인 길을 여는가?

물음의 원문
今人之性,生而有好利焉,順是,故爭奪生而辭讓亡焉
📜 물음이 태어난 구절

지금 사람의 본성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함이 있다. 이를 그대로 따르면 다툼과 빼앗음이 생기고 사양함은 사라진다.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이익을 향한 본성을 인정한 순자의 이 출발점은 이후 법가에 의해 극단으로 밀어붙여졌다.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였던 인연으로 이 통찰을 계승하되, 예(禮)라는 부드러운 교화 대신 엄격한 법과 상벌로 그 본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해 스승과 갈라섰다. 반면 맹자의 성선설을 따르는 정통 유가는 순자의 전제 자체를 거부하며, 인간에게는 본래 이익보다 우선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고 맞섰다. 인간 본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정치 제도 전체의 설계를 바꾼다는 것을, 이 논쟁은 명확히 보여준다.

♾️ 왜 아직 살아있는가

인센티브 설계가 정책과 조직 운영의 기본 도구가 된 오늘, 이익을 좇는 본성을 인정하고 다스리려 했던 이 오래된 접근은 여전히 살아 작동한다.

💡 한 줄 요약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정면으로 맞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이익을 좋아한다고 선언했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순자는 맹자의 성선설에 정면으로 맞서, 인간의 본성은 본래 이익을 좋아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을 비관하는 결론은 아니었다. 오히려 타고난 본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예(禮)와 교육이라는 인위(人爲)로 그것을 다스릴 현실적인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나는 이 냉정한 출발점에서 오히려 실용적 희망을 본다. 내 안의 이익을 좇는 마음을 부정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것을 다스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ONGO · 큐레이터

✍️당신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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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전: 순자 「순자」 성악편. 한문 원전 완전 PD. ONGO 자체 의역.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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