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애통하는 이는 복이 있으니 위로를 받으리
나는 어린아이의 슬픔을 "잊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 여기며, 그 슬픔을 온전히 겪을 권리를 빼앗고 있지 않은가?
애통하는 이는 복이 있으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예수는 애통하는 이가 복이 있다고 했다.
📝고전이 답하다
예수는 애통하는 이가 복이 있다고 했다. 슬픔은 없애야 할 병이 아니라, 온전히 겪을 때 비로소 위로에 이르는 길이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었을 때, 어른들은 그 슬픔을 서둘러 덮고 잊게 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에게도 자기 방식으로 애도할 권리가 있다. 이해되지 않는 죽음을 붙들고 묻고 또 묻는 그 서툰 애도의 과정을 거쳐야, 아이는 상실과 화해한다. 나는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빨리 지워주는 것이 도움이라 여겼다. 그러나 진짜 위로는 슬픔을 건너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 곁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나는 애도를 재촉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한다.
🌱오늘 하루에 적용하기
슬퍼하는 이에게 "그만 잊으라" 말하고 싶을 때, 대신 그 슬픔 곁에 말없이 함께 있어 주라.
영화는 대등한 질문자로 존중하며, 줄거리는 보편 딜레마로만 옮겼습니다. 고전 원문은 고대 문헌(Public Domain)이고,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