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살아 있는 이를 예로 섬긴다 — 존엄의 자리
나는 노년을 그저 마지막에 치러야 할 절차로 여기며, 한 사람이 삶의 끝까지 존엄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예(禮)의 무게를 놓치고 있지 않은가?
살아 계실 때 예로써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써 장사 지내며, 예로써 제사 지내는 것이다.
공자는 부모를 살아서는 예로 섬기고 돌아가서는 예로 장사하며 예로 기린다고 했다.
📝고전이 답하다
공자는 부모를 살아서는 예로 섬기고 돌아가서는 예로 장사하며 예로 기린다고 했다. 나는 이 말에서 예(禮)가 격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을 끝까지 지켜 주는 태도임을 읽는다. 평생 성실히 일하고 물러난 노인이 가난에 밀려 거처를 잃을 처지에 놓여도, 그를 짐이나 딱한 신세로만 보는 순간 그의 존엄은 먼저 무너진다. 예란 그가 스스로를 지키려는 마지막 자존을 알아보고 함께 떠받치는 일이다. 살아 있는 이를 예로 섬긴다는 것은, 늙고 약해진 사람을 치워야 할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온전한 한 인격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곁의 노년을 부담이 아니라 존엄으로 대하며, 그 마지막까지 예를 다하기로 한다.
🌱오늘 하루에 적용하기
곁의 나이 든 이를 도울 때, "돌봐 준다"는 마음보다 "그의 자존을 함께 지킨다"는 마음으로 한 가지를 해보라.
영화는 대등한 질문자로 존중하며, 줄거리는 보편 딜레마로만 옮겼습니다. 고전 원문은 고대 문헌(Public Domain)이고,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