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앎은 참된 믿음에 무엇을 더한 것인가?
우연히 맞힌 참된 생각과 참으로 아는 것 사이에는 무엇이 놓여 있는가?
근거를 갖춘 참된 믿음.
"앎은 근거를 갖춘 참된 믿음"이라는 플라톤의 정의는 이후 이천 년간 앎의 표준 규정으로 통용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근거를 원인의 이해로 다졌고, 중세는 확실성의 등급으로 정교화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게티어라는 철학자가 짧은 반례 하나로 이 정의를 뒤흔들었다 — 근거도 있고 참이기도 한 믿음이 여전히 앎이 아닐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못 박지 못하고 남긴 아포리아가, 이천삼백 년 뒤에도 여전히 열려 있음이 드러났다.
정보와 앎이 값싸게 뒤섞이는 시대에, "맞은 것"과 "아는 것"을 가르는 이 물음은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한 재판에서 배심원이 사실을 우연히 맞혔다 하자.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한 재판에서 배심원이 사실을 우연히 맞혔다 하자. 그 판단은 참이지만, 우리는 그를 "안다"고 하지 않는다. 왜인가. 플라톤은 앎이란 참된 믿음에 "근거(로고스)"가 더해진 것이라 제안한다. 그러나 대화는 그 근거가 무엇인지 끝내 못 박지 못한 채 아포리아로 끝난다. 나는 이 미완결이 실패가 아니라 정직임을 안다. 맞힌 것과 아는 것의 차이를, 나도 매번 다시 더듬는다.
✍️당신의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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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