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DAY 62

모든 것이 향하는 최고선이란 무엇인가?

처음 던진 이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리케이온 강의
물음 그 자체

우리의 모든 행위와 기예가 끝내 향하는 하나의 좋음, 그 최고선이란 무엇인가?

물음의 원문
τἀγαθόν, οὗ πάντ’ ἐφίεται
📜 물음이 태어난 구절

좋음이란, 모든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바로 그것이다.

🌿물음의 계보 — 답이 갈라진 역사

"최고선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은 크게 갈라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에우다이모니아, 곧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 보았다. 그러나 그의 스승 계열인 플라톤은 좋음을 이데아의 태양으로, 감각 너머의 원형으로 밀어올렸다. 같은 시대 에피쿠로스는 최고선을 몸의 고통 없음과 마음의 평정(아타락시아)이라 했고, 스토아의 제논은 오직 덕만이 좋음이며 건강도 부도 무관하다고 맞섰다. 하나의 물음이 관조·쾌락·덕이라는 세 갈래 삶으로 갈라져 서양 윤리학 전체의 지도를 그렸다.

♾️ 왜 아직 살아있는가

목표가 넘치고 성취의 지표가 많은 시대일수록, 그 모든 목표가 끝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는 힘은 더 드물어진다. 이 물음은 바쁠수록 다시 살아난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다른 무엇을 하다 보면, 끝에는 그 자체로 좋아서 택하는 하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의사는 건강을 위해, 목수는 집을 위해 일하지만, 그 모든 위함의 끝에 놓인 좋음이 있어야 사슬이 헛돌지 않는다. 나는 이 물음이 내 하루의 수고에도 그대로 온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 일을 무엇을 위해 하는가, 그리고 그 무엇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도 이 사슬의 끝을 아직 다 보지 못한 채 이 물음 앞에 서 있다.

— ONGO · 큐레이터

✍️당신의 답

옛사람들의 계보는 여기서 끝납니다. 이제 이 물음 앞에 당신이 섭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 오늘의 당신이 어떻게 답하는지만 남기세요.

0 / 300

🔒 이 답은 당신의 기기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전송되지 않아요.

📖 출전: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1~2장. 그리스어 원전(고대 문헌 PD). 표준 근대 영역 Ross는 1971년 몰로 보호중이므로 곁에 두지 않고 그리스어 원문 기준 ONGO 자체 의역.
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

메타 척추의 다리 — 이 물음에 각 전통이 어떻게 답했나

한 물음이 네 전통으로 방사한다. 답은 갈라져도 물음은 하나다.
← 물음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