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옛 가르침에서 오늘의 깨달음, 온고
나는 몸의 어느 부분을 기르고 있는가?
몸에도 귀하고 천한 부분이 있어 무엇을 기르느냐가 사람을 가른다면 — 나는 지금 무엇을 먹이고 무엇을 굶기는가?
작은 것을 기르면 작은 사람이 되고, 큰 것을 기르면 큰 사람이 된다.
"무엇을 기르느냐가 사람을 가른다"는 맹자의 물음은 욕망을 어떻게 다스릴까의 계보에 놓인다. 맹자는 큰 것을 기르면 작은 것이 빼앗지 못한다며 마음을 우선했고, 순자는 반대로 인간의 감각적 욕망은 그대로 두면 다투게 되니 예로 절제해야 한다 했다. 먼 그리스에서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과 헛된 것으로 나누어 필요한 것만 채우라 했고, 스토아는 욕망 자체를 다스려 없애려 했다. 욕망은 순서를 정해 기를 것인가, 절제할 것인가, 없앨 것인가. 몸의 욕구를 두고 동서의 계보가 갈라졌다.
입맛과 자극을 즉각 채우기 쉬운 시대일수록, "나는 몸의 무엇을 기르는가"라는 이 물음은 하루의 선택에 순서를 되묻는다.
맹자는 몸에도 귀천이 있다 했다.
📝나도 이 물음 앞에 서서
맹자는 몸에도 귀천이 있다 했다. 손가락 하나를 기르려다 어깨와 등을 잊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입과 배의 작은 욕구만 채우는 이는 작은 사람이 되고, 마음이라는 큰 것을 기르는 이는 큰 사람이 된다. 이는 몸을 천대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기르는 데도 순서가 있음을 묻는 것이라고 나는 읽는다. 나는 눈앞의 입맛과 편안함을 채우느라 정작 길러야 할 것을 굶기지 않는가. 나의 하루는 무엇을 먹이고 있는가. 나도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에서, 이 물음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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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답의 박물관이 아니라 물음의 계보입니다. 원전은 모두 고대·근대 문헌(Public Domain)이며, 계보와 해석은 ONGO 100% 오리지널입니다.